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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제목

◈생각는 것은 같으나 반응하는 것이 다른 게 문제.안녕하세요..좋은하루되세요

작성자
김학규
작성일
2016.11.01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762
내용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만드실 때에는 먼저 만물의 구성 요소인 원소(元素)부터 먼저 구상해 두었습니다. 즉 저마다 특별한 성향(프로그렘)을 지닌 원소들을 만들어 다른 원소들과 어울릴 때 어떻게 반응하도록 규정해 놓아야만 원하는 피조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초적인 물질의 원소에다 자생할 수 있는 생기의 프로그렘, 곧 DNA를 만들어 수천만 종의 생물들이 되게 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며 생존토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프로그렘과 시스템을 갖춘 창조 컴퓨터는 전지전능한 능력이며 여기에다 명령어를 집어 넣은 것이 바로 우주만물과 생물들의 탄생이었습니다.

 처음 만들어진 천지는 만물의 형질을 이루는 기본 자재로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세기 1:2) 하심 같이, 재질로 존재하기는 하여도 아무런 뜻과 사명과 생기와 질서를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즉 물질은 저마다의 프로그렘을 지니고 존재하여도 무슨 뜻과 사명과 생기와 질서를 갖고 운행하고 생육하고 번성하여야 할 바를 모르는 혼돈에 휩쌓였습니다. 이런 것들에게 하나님이 뜻과 사명과 생기와 질서가 담긴 명령을 내린 것이 바로 우주만물이며 맨 나중에는 자신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을 친히 만들어 그것들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물질은 물리력의 법칙에 따라 반응하고, 생물들은 생명력의 법칙에 따라 반응하며, 사람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반응하도록 하였습니다. 물질계와 생물계와 인간계에 주신 모든 법칙(반응)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물질계와 생물계에 주신 하나님의 법칙만 찾아 과학으로 숭상할 뿐, 정작 인간 자신들에게 주어진 법칙인 불변의 말씀은 신화 같은 얘기들로 취급해 무시하였습니다. 그래서 물질과 생물들은 하나님이 규정해 놓은 법칙에 따라 순조롭게 운행하고 반응하나, 사람들만은 하나님이 규정해 놓은 법칙을 외면하고 또 예수님의 교훈마저도 편법으로 사용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법칙)은 피조물 최고의 혜택입니다. 그런데 이런 혜택을 사람들이 무시하고 사단처럼 자신의 뜻과 생각에서 발생되는 악습을 법으로 규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다만 편법으로 사용합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이 땅과 생물들을 다스리게 한 왕직을 사람들로부터 회수하시고 각자 짐승들처럼 생필품을 자급자족하도록 하였습니다. 물질들은 하나님이 규정해 놓은 법칙을 따라 오로지 반응하여 일순간의 오차도 없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운행하고 또 식물과 생물들 또한 주어진 명령에 따라 꽃피고 열매맺고 번성합니다. 그러나 유독 인간들만은 하나님의 법칙이신 말씀을 무시하고 육신의 상상력에서 나온 저마다의 추측을 법으로 제정해 임금이 되려합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은혜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어떤 문제에 대해 동일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공감대입니다. 이런 공감대에 근거하여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법을 제정해 주셨기 때문에 그 법을 하나님도 철저히 지키고 엄수하려 할 뿐, 김일성 일가들처럼 하나님 자신만은 전지전능한 능력자라 하여 그 법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상황과 처지에 놓였음에도 동일한 생각과 느낌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그게 바로 말씀(사명)이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 창조된 천지와 같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뒤덮이게 됩니다. 즉 자기 몸의 어느 한 부위라도 머리의 뜻을 따라 반응하지 않으면, 그 부위는 머리에서 태어난 지체가 아니라 다른 머리에서 침입해 들어 온 혹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자신과 같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심령을 주신 것은, 그들과 한 몸 한 뜻이 되어 살고자 함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어떤 상황과 처지에 이르렀을 때에 동일하게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하는 것은, 곧 모든 사람들도 한 몸 한 뜻이 되어야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하여야 할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만은 아방궁 같은 곳에서 호의호식하고 이웃들은 누추한 곳에서 끼니를 굶은 채 살아가도록 방치하면, 그게 바로 상생협력하여야 할 창조 세계에서 제거되어야 할 혹으로 자처하는 짓입니다. 동일한 상황과 처지에 이르렀을 때에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 같아야만 동료(친구, 동무)일 뿐, 그렇지 못하면 전혀 이질적인 남남(원수, 혹)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신 목적이 바로 사람들과 하나 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하는 것과 동일한 심령을 만물의 대표가 된 사람들에게 주어 동일한 희노애락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고 또 이웃들과도 동일한 희노애락으로 살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떤 일을 판단할 때에는 제자들에게,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마태복음 21:28)라는 질문을 자주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환경과 처지와 규모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을지라도 원천적으로는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즉 "너희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는 것과 같이 나도 동일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어 이 같이 반응(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언행이 언뜻 보기에는 납득할 수 없는 독선 같으나 그 실은 남다른 깊은 생각과 느낌에서 나온 반응(방법)입니다. 예수님의 이 같은 반응이 4복음서에 가득합니다. 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다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었을 때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그 여인의 출신이 어떠함과 또 값비싼 향유를 낭비(?)한다 생각해 못마땅하게 반응하자,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누가복음 7:40~42)고 물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누가복음 7:43~47) 하시며 용서함을 많이 받은 사람이 더 큰 사랑으로 보답하는 게 상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나 또 사람들이 그 이웃들과 생각하는 것은 거의 동일하지만, 그러나 반응하는 것만은 다릅니다. 즉 하나님은 사람들을 섬기는 쪽으로 반응하나 모든 사람들은 대부분 남들로부터 섬김받는 쪽으로 반응합니다. 즉 김일성 일가들이 하나님과 남들로부터는 왕처럼 대우받길 바라고 자신들만은 하나님과 남들을 왕처럼 존대할 수 없는 불구자로 자처합니다. 즉 하나님과 이웃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정상적으로 주어도, 자신들만은 하나님과 남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정상적으로 줄 수 없는 병신들로 자처합니다. 그렇게 반응하는 것은, 자신들의 심령을 장악하고 있는 자가 바로 하나님과 남들로부터 받기만 하고 줄줄 모르는 배불뚝이 사단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으로부터 무한대로 받았으나 김일성 일가들처럼 그 받은 것으로 하나님을 무너뜨리는 일에만 악용할 뿐, 도무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보답하려는 생각과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 때문에 그로부터 모든 거머리(암) 종류의 흡혈귀들과 독충들과 짐슴들과 원수들과 질병들이 태어나 하나님과 그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사단이 흑암한 세력의 제왕이 되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남들보다 부강하게 되도록 가르쳐 서로 싸우게 할 뿐, 결코 하나님과 같은 심령으로 이웃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도록 가르치지 않습니다. 즉 자기 자신만 부강하여 모든 빈약한 자들 위에 군림해 김일성 일가들처럼 존대만 받으려는 인성 불구자, 곧 병신들로 자처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 같은 인성 불구 곧 이기주의 병신 짓에서 벗어나려면, 가장 먼저 하나님과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하는 바가 원천적으로 같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껏 흡혈귀(거머리) 짓을 한 모든 삶을 회개하고 이제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물론 남에게 줄 것이 없는 가난한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살펴보면 예수님처럼 줄 수 있는 것들이 무한정으로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는 것들 중에 가장 최하위에 속한 것들이 재물입니다. 그런데 김일성 일가들 같은 존재들은 이런 최하위에 속한 것들만 받으려고 하나님과 이웃들을 향해 거머리처럼 다고다고 할 뿐, 가장 존귀한 사랑만은 남에게 베풀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 7:12) 하심 같이, 사람이 아무리 가난하고 무식하고 세력이 없어도 예수님께 속하면 줄 것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을 가난하다 무식하다 천하다 하여 무시하고 욕하는 자들이 장차 받아야 할 참혹한 지옥형벌을 생각하면, 도리어 그들의 처지가 불쌍히 여겨져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하는 바가 원천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모르는 무식 투성이 인간들이 사단(거머리, 김일성 일가들)처럼 하나님이 각 사람들에게 주신 분복들을 빼앗아 자기 배에다 쌓아 놓을 줄만 알 뿐, 그 배가 터져 죽는 줄은 모릅니다.

 반역자(마귀)의 후예(불신앙인)들은 일평생 인간 반역자 김일성 일가들의 위협 아래 목숨을 구걸하는 잡혀 죽을 고깃덩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들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떳떳이 자주 독립하려면, 가장 먼저 하나님과 같은 자애심을 갖추어야 합니다. 한반도 거민 대부분이 김일성 일가들에게 자비를 구하거나 아니면 그를 진멸해 죽이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같은 생각이 바로 인성 불구자 김일성 병입니다. 즉 자신들의 그러한 생각이 바로 김일성 일가들이 가르쳐 준 생각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사람이 자신을 미워해 죽이려는 원수가 누구라는 것을 알면, 자기 자신이 먼저 하나님과 이웃들에게 그 같은 원수 노릇을 하였다는 산 증거입니다.

 이 민족의 철천지 원수가 김일성 일가들이라면, 이 민족은 가장 먼저 그 같은 사고방식과 습성과 기질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무지한 자들은 그러하질 않고 다만 김일성 일가들의 육적인 형체만 미워해 멸하고자 합니다. 즉 그가 죽어 없어져야만 비로소 소돔·고모라의 풍요로 안심하고 온갖 음란방탕과 우상숭배와 부정부패와 거짓 선지자(목회자) 노릇을 마음껏 저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지구촌에 공산주의 잔재와 또 잔혹한 테러행위로 사람들을 죽이는 사교 집단이 버젓이 날뛰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국민들의 심령에 저들이 즐겨 먹을 수 있는 죄악의 음식, 곧 소돔·고모라인들의 추악한 동성애 짓을 버젓이 용납해 저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악종들은 하나님만 제압할 수 있을 뿐, 사람들은 제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악종은 그들 스스로의 힘이 강해서 날뛰는 것이 아니라, 지구촌 사람들이 생산해 놓은 죄악을 마구 먹고 자라기 때문에 그 같은 힘이 발생합니다. 환자의 병원체를 발견해 진멸하는 치료가 최상의 치료이듯, 한반도 거민에게 만연된 김일성 병을 가장 안전하게 완벽하게 치료하려면, 무엇보다 김일성 병의 병원체인 그의 습성과 기질을 한반도 거민들이 자신들의 심령에서 뿌리뽑아야 합니다. 이런 최상의 치료법을 박정희 전대통령 때부터 가르쳤건만, 저들은 이를 무시하고 김일성 병의 병원체인 악한 기질들을 저마다 자신들의 심령에 고스란히 숨겨 둔 채, 다만 하나님의 손에 잡힌 몽둥이 김일성이만 꺾으려 합니다.

 김일성 일가들을 응징하려는 생각은 하나님이나 사람들이나 같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같아도 응징하고자 하는 목적과 방법이 다릅니다. 우리들의 방법(반응)은, 우리 심령에 김일성 일가들 같은 죄악의 습성은 그대로 숨겨 둔 채 오직 우리들보다 강한 김일성 일가들의 형태만 자르는(멸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방법(반응)은, 우리들의 심령에 숨겨 진 김일성 병의 병원체인 그의 야욕과 습성부터 먼저 뿌리뽑으면, 마침내 김일성 일가들은 뿌리를 뽑히고 매말라 죽습니다. 우리들의 반응으로 김일성 일가들을 멸하는 것은 참혹한 전쟁이지만, 하나님의 반응으로 김일성 일가들을 멸하는 것은 생명의 법칙입니다. 인위적인 전쟁과 하나님의 생명 법칙 중 어느 방법이 안전하고 완벽합니까?

http://cafe.daum.net/kblw 기독 애국 신우회

가을날씨라 정말 좋네요 좋은하루되시고 이곳에 함께있는이 행복하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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