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
24. 지금의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숭고한 기념사업을 정부주도로 추진
- 박정희 대통령은 조국에 대한 헌신을 했던 위인들을 기리고자 과거에 애국을 했던 분들과 관련된 많은 투자를 하여 사업을 진행시켰다. 아산시 백암리 일대는 이순신 장군의 옛집, 사당 등이 있는 곳인데, 1966년부터 1974년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성역화사업이 행해졌다. 충무공 현충사 관리소는 성역화 작업이 진행 중이던 1968년 12월 31일 설립됐다.
소장 1명 아래에 서무과와 관리과를 두고 있으며, 이순신 묘계를 관할하기 위해 음봉분소를 두고 있다. 이렇게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에 이곳을 성역화하고 종합적인 조경공사를 하여 오늘의 경관을 갖추도록 하였다. 또한 충무공인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광화문에 지금까지도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졌는데, 이순신 장군 성역화작업과 함께 추진되었다. 동상은 1968년 4월 27일에 착공 7개월만에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금일봉으로 건립된 20M에 달하는 국내 최대규모의 동상이다. 일본의 기운이 너비 100m나 되는 뻥 뚫린 길을 타고 밀려 들어올 것을 걱정한다는 여론을 보고 받은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인들이 가장 무서워할 인물의 동상을 세우라!"고 지시한 것이다.
강감찬 장군도 역시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되면서 1971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애국조상건립위원회'를 만들어 전국 각 시, 군마다 위인의 동상을 세워 정신을 본받도록 지시하면서 수원의 팔달산에 자리를 잡게 됐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에서 왜구 20만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송상현부사의 사당도 만들었다.
또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1970년에 만들어졌다. 특히나 재정이 어려워 기념관을 준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박정희 대통령의 귀에 들어가면서 정부 지원을 지시해 기념관을 준공하게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안 의사를 위해 남산 주변을 성역화하라고 지시해 추진위까지 만들어졌는데, 갑자기 김재규에 의해 시해를 당하면서 무산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안중근기념관'을 정부 지원으로 준공케 한 뒤 숭모회로 하여금 지난 79년 9월 안중근 의사 탄생 100돌을 기념해 안중근 기념관 정문 앞에 자신이 쓴 '민족정기(民族正氣)의 전당(殿堂)'이란 친필 기념비를 세우게 했다. 1979년 당시 숭모회 회장으로 있던 이은상과 박정희는 "안중근 의사의 위격(位格)을 이 충무공과 동격으로 높이는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었다.
이를 위해 청와대 정무수석 고건, 문공부장관 김성진, 서울시장 정상천 등으로 '안중근 의사 성역화 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정부와 숭모회는 성역화 장소를 두고 이견을 보이기도 했다. 정부는 강남지역의 국유지 10만평에 성역화를 건설하기로 한 반면, 숭모회는 남산공원 부지 1만평에 성역화 건설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는 등 입장 차이를 보이다가 10.26 사태로 인해 성역화 추진이 무산됐다.
이외에도 미국에서 서거한 이승만 박사를 모셔다가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그를 기렸으며, 조선의 고종의 아들 영친왕이 일본에서 고생하자 모셔다가 이방자 여사와 덕헤옹주와 함께 창덕궁에서 지낼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또한 독립유공자들 유해를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했는데, 대표적으로 이봉창 의사가 있다. 1963년 10월 7일에는 동학혁명 기념탑 제막식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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