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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고 강릉고등학교 졸업생 1964년생 조주희 를 아십니까?★

작성자
강수연
작성일
2018.01.08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60
내용
그와 나의 첫 만남은 서울역 동자동입니다.
아마 80년대 초,중반 일겁니다.
 
그는 노량진 어디쯤에서 일년 재수를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당시 검정고시 공부를 한다고 서울역 동네에 있었지요.
 
그는 참 난 사람이였습니다.
국민학교 뽀도시 졸업하고 객지로 나와 밥벌이 하던 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말 한 마디를 해도 있어보이고, 무엇인가 배운사람 티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와 나는 나이가 한살 차이임에도 많은 존경의 념을 가졌습니다.
아직도 귀에 쟁쟁한 그의 사투리 섞인 한 마디를 옮겨와 보겠습니다.
" 아 무슨 종로학원인가에 시험을 보드라니... 참..나..것을 왜 본다니..같잖아서.원..
참..학원을 시험보고 간다는게 이해가 안간다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당시. 노량진 대성학원과 종로학원은 서울대로 가는 중간과정 정도 되는
코스였다고 생각합니다.  말 할 것 없이 저 같은 사람은 꿈도 못 꿔볼 그런 학원이였지요.
 
일례로 제가 몇년에 걸쳐 연마한 당구치기는 120점에 머물러 있음에도
그 친구는 일년동안 연마 했다는 당구 점수가 500점 이였습니다.
아마.그 시절 서울역 대성 당구장을 넘나 들었던 사람은 기억 할 것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강릉고등학교. 즉 강고라고 줄여 부르던 그 이름에 많은 자긍심이 있었나 봅니다.
그 즈음 고등학교가 평준화? 평균화? 의 조치가 있었음에도 강릉고등 학교는 그렇지 않고 시험을 보고 입학하는ㅊ 퓨ㅜ/
시스템이라고 자랑섞어 말했으니까요.
 
그는 '까뮈'를 이갸기 했고 채만식의 '탁류'를 한자로 못 읽는다고 핀잔도 주고 그랬습니다.
물론, 저의 무식이거니 하고 말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처구니 없는 지적 허영이 아니였나 생각입니다.
 
저의 여자친구가 오리온 초코파이 공장에 다녔습니다.
그 어느날, 여자 친구가 김밥을 싸온다기 동자동 뒤에 있는 남산에 놀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조주희'가 오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많았지만 부득불 따라온다기 거절을 못하고
같이 버스정류장에 여자친구 마중을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그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의 여자친구 옷 매무새를 위에서 아래로 써늘한 눈빛으로 ?고 지가가는 그 눈빛.
경멸에 가득찬 그 시선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정말 왜 그랬는지 따져 묻고도 싶거니와 작금에 있어 그런 상황이 되풀이 된다면 장담하건데
그의 눈깔 한짝을 그냥 손으로 후펴파내 버리고 싶은 심정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기껏 나이 스무살 어린 시절에 무에 그리 사람을 대하는데 있어 생각의 너비고 높이고 크겠냐마는
아직도 서운한 감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그는 ㅡㅡ 조주희 ㅡㅡ 는 잘 나긴 했습니다.
당구치기도 그 시절 보기 드물었던 500을 첬고, 키도 180 어름에 있었고
공부또한 강고를 나왔다는 많은 자긍심이 있었고, 그 시절 삼국 대학교라고 불리던
단국,동국,건국 정도는 수성 만연필 약만 있으면 들어 간다고 했던 시절에
체력장 포함 총 360점이 만점이면, 의 삼국대학교는 160 에서 180점만 맞아도
들어 가는 학교였고..  그는 그 당시 한해 겨울 이렇게 말했습니다.
" 어느대학교 면접보러 갔더니. 별 무식한 소리를 하더라. 나.참.더러브서.. 아니 학교를 오는 이유가 뭐냐니??
교육의 목표가 인간의 완성 아니냐고..?? 으이?? 교수란 놈이 택도 ?는 소리를 하더라고..씨이펄..내가 학교를 안가야지."
 
나는 그의 열정에 찬 소리에 소리내어 박수는 안 첬지만 마음과 입으로 맞장구를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강릉이 고향이고 강고를 나왔다는 자긍심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제비리' 라는 곳이 아마 그의 태 묻은 고향 일 겁니다.
그의 동기간은 여러명이 있으나. 가장 자주 말했던  위의 형 성함은
 
'조철희' 일겁니다.
 
그는 똑똑했습니다.
그 시절 오배원을 넣으면 노래 한 곡을 부를 수 있는 노래방 문화가 등장하던 시기에
노래 또한 잘 했습니다. 왜 아니 그렇겠습?까? 나는 강고 나온 인재인데..적어도
니들하고는 레벨이 다른데..하는 자긍심의 발로였겠지요.
 
요즘음 '고시원' 이라고 칭해지는 건물이 예전에는 '독서실' 이였습니다.
통칭 말해 게나 고둥이나 다 하루 정액만 끊으면 하룻밤을 요할 수 있었지요.
조주희나 나나 생활 공간이 독서실 이였습니다.
 
개?앤, '기노련 신문" 이나 '사노맹' 종합지를 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조주희의 말은 항시 그랬습니다.
" 저이가 프락치 같지 않냐고?? 뭔가 수상하다고.."
 
세월이 흘러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조주희가 프락치가 아니였나 의심이 됩니다.
그 의심의 근거는 나는 1984년 스무살 생일이 되던 날에 신체검사 통보를 받았고
신검에 응해서, 보충역 소집대기를 명 받고 향후 3년을 대기의 상태로 있었는데.
그이는 나보다 나이가 한 살이 더 많은 상황이면..어떤 형태든 군 문제에 대해서는 설명이든 해명이든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말이 없었으니까요. 오직 군 문제에 대해서만 나오면 이상한 우스개 소리로
화제를 바꾸던 그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 '조주희' 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가끔씩 서울역으로 찾아오는 친구는. 그 당시 고려대학교에 다니던 '용익' 또는 ' 용호' 라고
불리던 그의 부친이 강릉 경찰서장을 역임했다는 친구고.. 다른 한 친구는 키도 작고 통통한 친구인데
그 당시 부천 어디인가에 '공장노동자' 로 위장 취입해서 공돌이 생활을 한다고 했습니다.
 
어디 본명을 내놓고 말하기 어려웠던 시절이라. 누군들 명자가 본명인지 별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기억하는 명자는 그렇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렇게 한 시절..그래봐야 ?년 정도 겠지요.
잘 살았습니다.
그러다. 그 '조주희' 와 나는 주위에 어울렸던 사람과 생계를 의하여 노동현장..즉 건설현장으로
밥벌이를 하러 나갔습니다.
 
시절이 87년 노태우의 629 선언이 난 직후이지요,
아..그러고 보면 그 6.10 대 항쟁때 조주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음을 기억합니다. 빌어처먹을놈..
 
나는 생계를 위해 ..그는 표면적 생계를 위해 건설 현장에 나가서
밥벌이를 같이 했는데, 안산 시화공단이 처음 조성될 때 입니다.
그는 며칠 일하고 도망갔습니다.
저는 계속 일하고 결국 간조날 금액을 나보다 만원 적게 일당을 책정해 주기에
오야지와 말 싸움도 제법 했습니다만,. 결국은 제가 졌지요.
 
지금도 그 돈 한 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모두, 일당 오만원으로 쇼부보고 일하러 갔는데.. 그의 일당이 4만으로 셈헤주기에
저는 돈 받아 전달해 주는 위치에서..고민이 많았습니다.
결국은 제돈을 보태서 그 한테 전해줬지요.
 
그는 그러한 사실을 아직도 모를 겁니다.
그저 저 잘나서 현장에서 일만 대충하고 가도 알아서 돈 챙겨다 주겠거니 생각일겁니다.
 
한 간조 타면 동네 와서 어지기 떠지기 다 모여놓고 돼지갈비 에다 소주 한잔 사주는게
시절의 예의 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임금을 전해주는데, 돈 20만원이 필요하대서 그 돈을 빌려주고 돼지 갈비 값 내니
나의 주머니는 텅텅 빌 지경이였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조주희'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자랑찬 강릉고등학교 동문 여러분.. 여러분 선배중에, 후배중에 조주흴 아시는 분., 그의 형 조철희를 아시는분
그의 선친이 집달리 였다는 것을 아시는분, 그의 태 묻은 고향이 제비리 라는걸 아시는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당사자.
조주희 이글 보면 ..빨리 돈 갚아라.
내가 20년 전에 빌려준 20만원과 너의 자존심을 위해 채워줬던 돈 5만원과
그로 인해 마이너스된 나의 상황을 고려해서.. 돈 갚아라.
아마. 스부배는 넘지 싶은게 내 생각이다.
 
이제는 너도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있음을 알기에 이렇게 수취인분명, 수취곳불명의
글을 쓴다. 이 글은 내가 아는 모든 포털 사이트에 쓸 것이며, 새로이 나타나는 모든 블로그 까지 다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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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giving advice 지혜의 가장 명백한 징조는 쉴새없이 명랑한 것이다.(몽테뉴) but of little use to him who cannot read it.
♬<00> 절제는 모든 미덕의 진주고리를 이어주는 비단의 실이다.(홀) <00> 자신을 더 적게 사랑하는 것이다.(클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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